서소문본관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는 고도성장과 민주화 시기를 거쳐 성장해온 한 도시가 생애 최초로 봉착한 머뭇거림 앞에서, 미래시제로 고안해보는 미술언어들을 총칭한다.?

전쟁과 테러, 이주와 실향, 재해와 가난이라는 전지구적 난제를 탑재한 채, 막 해방 70주년을 넘긴 거대도시 서울은, 멈춰버린 근대화의 시간관이 남긴 부작용으로, 급작스럽게 퇴행의 징후들을 노출한다. 적대적인 목소리들이 서로를 튕겨내는 도심광장과 사이버스페이스 그리고 자유화와 통제가 배틀을 벌이고 있는 소셜미디어 등이 공공의 장소가 되었고, 트라우마는 모국어가, 힐링과 위로는 히트상품이 되었으며, 유머는 잔혹극이, 혐오와 증오는 대세감정이 되었다.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는 산적한 동시대의 도시문제와 국가위기를 섣불리 진단하고 비판할 수도, 그렇다고 두려움과 불안을 일순간 스펙터클과 아름다움으로 위무할 수도 없다는 것 정도는 안다. 비판보다는 나직하고 위로보다는 깊게, 이를 테면, 물 속으로 더 가라 앉기를, 그리하여 급진적 단절 이후, 불현듯 솟아나는 정체불명 에너지와 돌연변이를 고대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는 서소문본관에서, 이미 와 있으나 아직은 아닌, 혹은 계속해서 완성을 미루거나 미뤄지는, 진행형 작업들을 배양하고 촉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미술관 도시를 기획하고 있는 서울의 시립미술관 수장고에서 꺼낸 진행형 소장품 목록은, 국내외작가들이 발굴, 재조립하는 미완의 기호들과 허구적 언어로 이어진다. 그렇게 앞뒤에서 당겨져 현재로 모인 시간들은 미처 알지 못하던 세상, 익숙하지 않은 세계 또는 애써 외면했던 영토들과 우리를 면대면하게끔 이끈다. 그리고 이러한 미지와의 조우는 때로 가라앉은 섬들로, 사라져가는 아카이브로, 혹은 동식물의 세부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삶의 이면들로 관객들을 전이시킨다. 그 전이의 접점은 여러 ‘포스트’들의 연쇄반응을 통해 변곡점처럼 작용하여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각기 다른 지점들로 관객들이 불시착하게 한다.

<미디어시티서울>2016에서 서소문본관은 남서울생활미술관과 북서울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동시다발로 벌어지는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가 상호교차되는 지점이며, 2015년 프리비엔날레와 출판프로젝트 『그런가요』, 여름캠프 <더 빌리지>와 <불확실한 학교>의 결과물들이 집적되는 파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