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스 렉
〈시바의 길(2072년 서울)〉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의 역사와 건축을 하나의 장소 특정적 가상 세계로 표현한 작업으로, 여기에서 미술관은 불교에서 말하는 창조와 파괴의 끊임 없는 순환을 나타내는 하나의 알레고리로 볼 수 있다. 허구의 게임이면서 영적인 여정이기도 한 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중국인 비구니 시바의 시점에서 이루어진다. 시바는 서기 372년에서 2072 년으로 순간 이동해, 어떤 알 수 없는 전쟁 이후 폐허로 남겨진 미래의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을 여행한다. 잔해 속을 헤매던 그녀는 파손된 작품들, 찢어진 그림들, 불에 타버린 홍보물들, 파괴된 드론(무인 항공기) 등을 통해 잃어버린 세계와 다시 조우한다. 이 때 새로운 삶의 신호는 예기치 않았던 장소에서 나타난다. 가상의 세계는 다양한 타임라인 사이를 잇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건물 전면(파사드)을 맴돈다. 이곳은 미래의 폐허, 현재의 미술관, 역사적인 기관(과거의 대법원)으로 동시에 존재하는 단일 요소이다. 그 시청각적 풍경은 이 건물의 (허구이기도 하고 실재이기도 한) 우화와 그것이 20세기 역사와 맺고 있는 관계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시바의 길(2072년의 서울)〉은 실제 장소를 기반으로 하여 가상의 유토피아 세계를 그려내는 로렌스 렉의 〈보너스 레벨〉 연작 중 하나이다. 각 장마다 3D 애니메이션, 사운드 디자인, 비선형적 내러티브를 통해 물리적 세계를 재고하면서, 대안적인 역사와 기억들을 관객에게 제시한다. 이 기묘하게 친숙한 가상 세계와의 만남을 가지고 나면, 현실은 수 많은 가능한 세계 중 단지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로렌스 렉
1982년 생. 런던에서 활동.
로렌스 렉은 소프트웨어, 비디오, 설치, 퍼포먼스를 통해 사유의 세계와 장소특정적인 시뮬레이션을 만들어 낸다. 주로 실제 장소를 기반으로 하는 그의 기묘한 디지털 환경은 가상 세계가 우리의 실제에 대한 지각에 미치는 영향을 반영한다. 그의 작품에서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유토피아와 폐허, 욕망과 상실, 판타지와 역사의 대비적 관계는 이러한 상호 영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렉은 쿠퍼 유니온, AA 건축학교, 케임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 컬리지를 졸업했다. 최근 전시로는 〈트램웨이〉(글래스고 인터네셔널, 2016), KW 인스티튜트(베를린), 큐빗 갤러리(런던), 와이싱 아트 센터(케임브리지), 델피나 재단 등에서 열린 전시들이 있다. 저우드/FVU 어워드(2016), 텐더플릭스/ICA 아티스트 비디오 어워드, 데이즈드 이머징 아티스트 어워드(2015)를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