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그리스의 아테네 사람들은 ‘좋은 삶(eu zên)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발견했습니다. ‘좋은 삶’이야말로 누구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하지만, 또 놀랍게도 생각하거나 이야기하기를 가장 꺼리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닷가의 조그만 마을이었다가 불과 몇백년 사이에 내란과 혁명과 전쟁 등 오만가지 곡절을 거쳐 지중해 한쪽을 지배하는 해양 제국으로 변모한 아테네 사람들은 이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진 자와 없는 자가 서로 원수고 되고, 순박하던 마을 사람들이 먼 곳의 금은보화에 눈이 멀어 전쟁과 대량 학살을 서슴지 않는 살인마가 되고, 신께서 정하신 도리라고 믿어왔던 모든 전통과 법률은 누구나 비웃는 휴지조각이 되어버리고... 이렇게 우리의 삶에 기초가 되었던 모든 것들이 변하고 흔들리고, 그래서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가 없고, 그래서 당장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게 된 이들은 잃어버린 길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나침반으로 이 ‘좋은 삶’이라는 질문에 매달렸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좋은 삶’이라는 나침반은 절실하게 소중합니다. 21세기 특히 2010년대에 들어선 이후 우리의 세상은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새로운 산업혁명의 물결이 우리의 물질적·정신적 생활 방식을 밑둥부터 바꾸어 나가고 있으며, 아이와 청년과 중년과 노년 모두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으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새로운 상황에 부닥치고 있으며, 그 와중에서 기후 변화와 생물들의 멸종 등으로 지구 전체의 생명 영역 자체에 파국이 임박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우리가 신주 단지처럼 모시던 수많은 것들이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으며, 그 와중에서 인간 자체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새로운 존재로 바뀌어 나가는 진화의 과정을 눈앞에서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후좌우와 아래위조차 구별할 수 없는 총체적인 변화의 시대에 우리가 길을 되찾기 위해 매달릴 질문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을 낼 수 있는 것은 신과 짐승뿐이며, 인간은 서로 모여 생각과 마음을 모으고 나누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아테네 사람들은 도시 한복판에 ‘아고라(agora)’라는 광장을 만들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치나 전쟁처럼 거창하고 공적인 이야기도 좋습니다. 자신의 욕망이나 꿈과 같은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도 좋습니다. 그 모든 커다랗고 또 자잘한 이야기들이 섞이고 엮이는 가운데에서 우리들은 ‘좋은 삶’에 대해 서서히 자기 스스로의 생각과 모습을 잡아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토론은 무수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 덧없이 무섭게 변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변하고 있는지 또 변할 수 있고 변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간의 직감은 말과 글과 그림과 동상과 춤과 노래 등 무수한 방식으로 포착될 수 있고 또 표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저희들이 준비한 이 ‘좋은 삶’을 토론할 ‘아고라’로 여러분을 모십니다. 이 곳은 지금 변하고 있고, 또 이미 변해 버린 세상을, 그 속에서 함께 변해 나가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또 이야기 드리고자 합니다. 저희는 ‘좋은 삶’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 드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그럴 능력도 없습니다. 단지 아직 나타나지 않았을 뿐 이미 우리의 상상과 직감 속에서 언뜻언뜻 보이기 시작한 미래의 ‘좋은 삶’의 옷자락을 잡아 그 파편을 펼쳐놓을 뿐입니다. 그 파편 조각들을 모아서 여러분 스스로의 ‘좋은 삶’의 그림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저희들은 그 파편들 그리고 그 파편들을 이어붙일 수 있는 작업장을 여러분께 드리고자 합니다. 이 ‘좋은 삶’의 질문 앞에서는 더 많이 아는 이도, 덜 아는 이도 있을 수 없습니다. 모두 함께 저희가 준비한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에 와서 마음과 머리를 맞대보기를 감히 청합니다.
디렉토리얼 콜렉티브
홍기빈, 임경용, 김장언, 김남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