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규 Haegue Yang

1971년 생. 서울과 베를린에서 활동. 조각이나 설치 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두드러지는 양혜규의 작업은 종종 역사적인 인물이나 사건들의 실체를 강조하는 독특하고 자율적인 추상 언어로 귀결된다. 미국 워커아트센터(2009), 오스트리아 브레겐츠미술관(2011), 영국 모던아트옥스퍼드(2011), 독일 하우스데어쿤스트(2012)와 같이 세계적으로 유수한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베니스 비엔날레(2009), 카셀 도쿠멘타(2012) 등의 국제적인 미술 플랫폼을 통해서도 작품이 소개되었다. www.heikejung.de

소리 나는 조각 Sonic Sculptures, 2014
Performative sculptures, metal structure, bells, metal rings, dimensions variable
_MG_3986
서울시립미술관 3층 벽면에 설치된 ?소리 나는 돌림 타원?놋쇠 도금 #13, #14, #15?는 손으로 작품을 회전시킬 수 있는 작품이다. 정지하고 있을 때는 타원의 형태를 유지하지만, 손으로 돌리기 시작하면 방울 소리와 함께 시각적 번짐 현상으로 인해 원형처럼 보이게 된다. ?소리 나는 돌림 도형 E?놋쇠 도금 #23?도 정지 상태와 회전 상태를 오가는 작업 원리를 유지하되, 배경 면에 칠해진 붉은색이 방울의 색과 혼합되어 보이는 시각 현상이 더해진다. 작품의 물리적 움직임과 방울이 부딪혀 내는 소리, 일시적 형태, 착시와 색채 혼합 등이 만들어내는 이러한 현상학적인 상호작용은 사물이 소리로, 물건이 떨림으로, 개체가 공명으로 도약하는 가능성을 가늠하게 한다.
 
1층 설치에서는 방울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애니미즘이 하나의 앙상블을 이룬다. 바닥에 테이프로 표시된 선형의 궤도 중심에 위치한 ?소리 나는 보름달?중량 중형 #2?를 비틀어 돌리면 공 모양의 몸체에서 촉수처럼 늘어뜨려진 방울사슬들이 기하학적 형태의 연쇄적인 결 또는 ‘춤’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소리 나는 춤?이복 언니?에 달린 손잡이를 잡고 이 조각을 파트너로 삼아 전시공간을 돌아다니며 제목 그대로 ‘춤’을 출 수 있다. 작품을 이루는 수많은 방울은 예측하기 어려운 쇳소리를 내며 조각이 차지했던 물리적 공간을 공명을 통해 새롭게 열어젖힌다. 방울이 동서고금에서 지녀온 인류학적인 의미에 힘입어 조각의 공간은 우리를 문명의 아주 긴 시간대에 대한 상상의 공간으로 옮겨놓기도 한다.
 
이 ‘춤’을 통해 세계를 여는 시작으로서의 소리(많은 고대신화에서 소리가 세계의 시작이라고 말하고 있듯이)라는 화두가 넌지시 던져진다. 이러한 ‘코스몰로지’(우주관)에 대한 관심은 ‘궤도’의 재현으로도 나타난다. 작품들은 바닥에 테이프로 표시된 궤도를 따라 실제로 움직일 것처럼 배치되며, 조각의 부분과 전체, 전시공간의 불변성과 유동성은 불현듯 천체물리의 어떤 법칙을 생각하게 한다. ?바람이 도는 궤도?놋쇠 도금, 놋쇠 니켈 도금?에서 선풍기들은 사방팔방으로 회전운동을 하면서, 바람과 소리의
 
‘진동주기’를 만든다. 이 키네틱 조각은 행성 운항의 신비를 머리가 여럿 달린 ‘로봇?생물체’와 같은 해학적 상징으로 제시한다. 양혜규의 작품은 근대 자연과학의 기계론적 결정주의를 부지런히 소진시키거나 새로운 질서를 위해 간절히 주문을 외우는 것만 같다. [박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