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욱 Choi Gene-uk

1956년 생. 서울에서 활동. 최진욱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아르코미술관, 대안공간 풀, 일민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광주비엔날레(2002)를 비롯해 ?진경산수?그 새로운 제안?(국립현대미술관), ?히든트랙?(서울시립미술관) 등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북한 A North Korea A, 2000
Acrylic on canvas, 97×130 cm
최진욱

최진욱의 ?북한 A?는 2000년에 열린 ?서울의 화두는 평양?이라는 전시를 위해 그린 그림이다. 2000년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 직후로 남북 사이가 그나마 좋을 때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우리가 주로 경험한 ‘미술’은 신문과 잡지를 위해 그려진 몇몇 화가들의 가벼운 여행 스케치와 금강산 ‘달력사진’이었다. 당시 많은 화가들이 실크로드를 걷는 낙타를 그리듯이 북한의 인물이나 풍경을 ‘이국의 평화로운 풍경’으로 묘사했던 것이다. ?북한 A?와 ?북한 B? 역시 평화로운 풍경을 그리고 있지만, 이 그림은 당시의 이데올로기적으로 ‘순수한’ 그림과 전혀 달리, 뭔가 불순해 보인다.
 
이 그림들은 평화로운 풍경을 넘어 일종의 낙원의 이미지로서, 즉각적인 이념적 부담을 떠안는다. (게다가 우리는 북한이 ‘사회주의 낙원’이라는 표현을 버릇처럼 쓰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물론 북한이 사회주의 낙원에서 한참 멀다는 것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북의 통치자나 인민조차도 ‘북조선’을 더 이상 낙원으로 믿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그림은 북에서나 남에서나 현실적인 그림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아득한 꿈의 이미지이다. 이에 따라 이 그림은 보기보다 복잡한 의미를 갖게 된다.
 
북한의 인민화가들이 고도로 조작적인 선전선동 이미지를 제작할 수는 있어도, ‘진정한 낙원?인민의 정말로 즐거운 한때’를 그리지는 못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그림의 몽환적인 아름다움이 폭로하는 것이다. 공산주의 유토피아에 대한 이념의 과잉은(실제로는 물론 이념의 부재이기도 함) 현실의 순간순간에 실제로 존재하는 ‘행복한 순간’에 대한 관심을 배제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그림은 아름다운 파라다이스의 꿈을 그리고 있다. 그림은 북에서도 남에서도 그릴 수 없거나 그리지 않는 ‘낙원 북한’, 남북 모두 금기시하는 (적어도 이념적으로) 게으르고 긴장 없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완전히 이완된 세계의 어떤 장면이다. ?북한 A?, ?북한 B?는 하나의 그림이 된, 이상과 현실, 동기의 선과 결과의 악, 의지의 상승과 실제의 추락, 순간의 현상학적 즐거움과 이데올로기적 도그마 사이에 존재하는 막대한 모순처럼 보인다. [박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