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귀신 간첩 할머니인가?
이번 ?미디어시티서울? 2014는 서울시립미술관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다. 올해로 8회째를 맞이하는 미디어시티서울은, 이전과 달리 ‘아시아’를 화두로 삼았다. 아시아는 강렬한 식민과 냉전의 경험, 급속한 경제성장과 사회적 급변을 공유해왔지만, 이를 본격적인 전시의 주제로 삼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이번 전시는 ‘귀신, 간첩, 할머니’라는 키워드를 통해, 현대 아시아를 차분히 돌아보는 자리가 될 것이다. 귀신은 아시아의 누락된 역사와 전통을, 간첩은 냉전의 기억을, 할머니는 기나긴 가부장제 사회를 살아온 ‘여성의 시간’을 비유한다. 그러나 출품작은 이러한 주제를 훌쩍 넘어서기도 하고 비껴가기도 하는 풍부한 가능성의 상태로 관객 앞에 놓여 있다. ‘귀신 간첩 할머니’는 전시로 진입하는 세 개의 통로이다.
 
 
ghost
 
grandma
 
spy
‘귀신’은 역사의 서술에서 누락된 고독한 유령을 불러와 그들의 한 맺힌 말을 경청한다는 뜻으로 쓰고자 한다. 유령의 호출을 통해, 굴곡이 심했던 아시아를 중심으로 근현대사를 되돌아볼 것이다. 귀신은 또 ‘전통’과도 결부되어 있다. 불교, 유교, 무속, 도교, 힌두교의 발원지이자 그 종교적 영향이 여전히 깊은 아시아에서, 현대 미술가들이 그 정신문화의 전통을 어떻게 새롭게 발견, 발명하고 있는지 주목하고자 한다. 우리는 미디어와 미디움(영매)의 재결합을 통해, 현대 과학이 쫓아낸 귀신들이 미디어를 통해 되돌아오기를 희망한다.
‘간첩’은 아시아에서 식민과 냉전의 경험이 각별히 심각했다는 점에 주목하기 위한 키워드이다. 동아시아, 동남아시아가 함께 겪은 거대한 폭력은, 전쟁은 물론 사회의 극심한 상호불신을 낳았고, 이는 여전히 이 지역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 전시는, 미소 사이의 패권 경쟁으로만 볼 수 없는 냉전의 지역적 다양성에 주목한다. ‘간첩’은 금기, 망명, 은행 전산망 해킹, 영화의 흥행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을 아우른다. 또한 코드 해석, 정보, 통신을 다루는 다양한 미디어 작가들의 작업 방법이, 어떻게 ‘간첩’의 활동과 유사해 보이면서도, 그 밀폐된 가치를 완전히 개방시키는지 목격하게 될 것이다.
‘할머니’는 ‘귀신과 간첩의 시대’를 견디며 살아온 증인이다. 최근 위안부 할머니를 둘러싼 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갈등은, 식민주의와 전쟁 폐해의 핵심에 여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다른 한편, 한국 전통문화에서 ‘옛 할머니’는 자손을 위해 정화수를 떠놓고 천지신명께 비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아마도 ‘할머니’는 권력에 무력한 존재이지만, ‘옛 할머니’가 표상하는 인내와 연민은 바로 그 권력을 윤리적으로 능가하는 능동적인 가치로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전시에서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아내가 아니며, 손주의 할머니만이 아닌 그녀들 자신으로 나타나게 된다. 역사에 관한 한, 치매는 오히려 젊은 이의 것이다.
영화 속의 스파이는 매력적이지만, 뉴스의 ‘간첩’은 무섭다. 제사의 신(神)은 받들어야 하나 밤에 마주치는 귀(鬼)는 멀리해야 한다. 할머니는 공경해야 마땅한 존재지만, 동시에 대대적인 젊음의 찬양 밖으로 추방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은 모두 가끔 눈에 띄기도 하지만, 대체로 쉽게 보이지 않거나, 보고 싶지 않거나, 보면 안 된다. 그들/그녀들은 침묵의 기술자이자, 고급 정보의 소유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절규하거나 고백하거나 폭로하거나 증언한다. 그들은 상황에 따라 쉽게 역설적인 존재가 된다.
우리는 흔히, 한반도의 비무장지대가 진기한 생태계를 보존하고 있는 기묘한 역설로부터, 어떤 변화의 희망을 엿보게 된다고 말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미디어시티서울? 2014는 귀신, 간첩, 할머니가 쓰는 주문, 암호, 방언으로부터 인류 공동체의 새로운 언어를 구상하는 집단지성의 현장이다. 42명(팀)의 전시 참여작가와 42편의 영화감독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박찬경, ?미디어시티서울? 2014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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